
EU Taxonomy와 한국형 녹색분류체계에서 본 원자력 에너지의 향후 과제
초록
녹색분류체계는 친환경 경제활동을 정의함으로써 기업, 금융기관, 투자자 등이 녹색 경제로의 전환을 보다 체계적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한다. 비록 논란이 있었으나, 엄격한 기술적 기준을 충족한다는 전제하에 원자력 에너지가 EU Taxonomy와 한국형 녹색분류체계에 포함되었다. 원자력 에너지의 포함 여부에 대해 상이한 견해가 존재하지만, 녹색분류체계는 원자력 에너지의 지속 가능한 활용을 위한 방향성을 제시하는 중요한 준거점이 되고 있다. 본 연구는 EU Taxonomy와 한국형 녹색분류체계를 비교·분석함으로써, 원자력 에너지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논의하는 데 목적을 둔다. 이를 통해 원자력 에너지가 친환경 경제활동으로서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한 정책적·제도적 시사점을 도출하고자 한다.
Abstract
Green taxonomy serves as a critical framework by defining environmentally sustainable economic activities, thereby enabling corporations, financial institutions, and investors to systematically facilitate the transition to a green economy. Despite ongoing debates, nuclear energy has been included in both the EU Taxonomy and the Korean Green Taxonomy, provided it meets stringent technical criteria. While differing perspectives persist regarding the classification of nuclear energy, its inclusion in these taxonomies serves as a key reference point for its sustainable use. This study aims to compare and analyze the EU Taxonomy and the Korean Green Taxonomy to examine how nuclear energy should be positioned within these classification frameworks. In doing so, it seeks to derive policy and institutional implications for ensuring the long-term sustainability of nuclear energy as an environmentally viable economic activity.
Keywords:
EU Taxonomy, K-Taxonomy, Carbon Neutrality, Nuclear Energy, Radioactive Waste Disposal Equipment키워드:
EU 택소노미, 한국형 녹색분류체계, 탄소중립, 원자력,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I. 서론
전 세계적으로 기후위기 대응, 탄소중립, 그리고 지속 가능한 경제사회로의 전환이 중요한 과제로 부각되면서 이를 실현하기 위한 금융의 역할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기존 산업 구조를 친환경적으로 전환하려면 대규모의 자금조달과 금융지원이 필수적이지만, 어떤 산업이 친환경 산업인지, 지속 가능한 경제활동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녹색분류체계(Green Taxonomy)는 친환경 경제활동을 정의하는 기준으로 기업, 금융기관, 투자자 등이 녹색경제로의 전환을 효과적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녹색분류체계를 활용하면 어떤 경제활동이 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한 지를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기업과 금융기관, 투자자들은 녹색위장행위(Green Washing)를 사전에 방지하고 지속 가능한 투자의 투명성을 높일 수 있다.
유럽연합(European Union, EU)은 2020년 7월 세계 최초로 유럽연합 녹색분류체계(이하 ‘EU Taxonomy’)를 제정하여 친환경 경제활동을 정의하는 법적 기준을 마련했다. 이후 세 차례의 위임법(기후위임법 Climate Delegated Acts, 보완기후위임법 Complementary Climate Delegated Acts, 환경위임법 Environmental Delegated Acts)1) 제정을 통해 세부적인 기준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도 2021년 12월 한국형 녹색분류체계 가이드라인(K-Taxonomy Guidelines, 이하 ‘한국형 녹색분류체계’)을 발표하여 친환경 경제사회로의 전환을 위한 지속가능금융 체계를 구축하고자 하였다. 다만, 한국형 녹색분류체계는 법적 강제력이 있는 EU Taxonomy와 달리, 가이드라인 형태로 마련되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원자력 에너지가 녹색분류체계에 포함되는 문제는 EU와 한국 모두 치열한 논쟁의 대상이었다. 원자력 에너지는 탄소중립 목표 달성에 기여할 수 있는 저탄소 에너지원으로서의 장점이 강조되는 한편(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2018), 방사성 폐기물 처리와 안전성 문제로 인한 부정적인 측면 역시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김인혜・김서용・고현진・김진아・김채영・현윤경, 2024; 정상근, 2023). EU와 한국은 여러 논의를 거쳐 일정 조건을 충족한 원자력 에너지를 제한적으로 친환경 경제활동으로 분류하고 있지만, 세부 기준에서 차이를 보인다. 본 연구는 이러한 차이가 어떤 배경과 정책적 고려에서 비롯되었는지 분석하고자 한다. 또한, EU와 한국의 녹색분류체계에서 원자력 에너지가 친환경 경제활동으로 인정되는 기술적 선별 기준을 알아보고, 원자력 에너지 활용을 위한 향후 과제를 도출하고자 한다. 본 연구는 여러 국가 녹색분류체계 중 EU Taxonomy를 중심으로 분석하였는데, 이는 EU가 세계 최초로 녹색분류체계를 법제화하였고, 한국형 녹색분류체계는 EU Taxonomy를 주요 참고 모델로 삼아 개발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연구는 기존 문헌에서 다루어지지 않았으며, 원자력 에너지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녹색분류체계가 중요한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
본 논문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Ⅱ장에서는 선행연구를 검토하고 Ⅲ장에서는 녹색분류체계의 개념과 제정 과정을 살펴본다. Ⅳ장에서는 EU Taxonomy와 한국형 녹색분류체계에 포함된 원자력 관련 내용을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Ⅴ장에서는 원자력 에너지의 향후 과제를 도출한다. 마지막으로 Ⅵ장에서는 연구의 결론 및 시사점을 제시한다.
Ⅱ. 선행연구 검토
EU Taxonomy 규정은 2020년 7월에 제정되었으며, 구체적인 경제활동의 목록과 기술적 기준을 명시하는 위임법이 2021년 12월, 2022년 7월, 2023년 11월에 각각 제정되어 EU Taxonomy와 관련된 연구는 비교적 최근에 수행되었다.
EU Taxonomy에서 원자력 에너지의 지속가능성 분류에 관한 연구를 살펴보면, 이 주제가 에너지 정책, 지속 가능한 금융, 그리고 공공 담론의 교차점에 위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695개의 뉴스 기사를 분석하여 미디어가 원자력 에너지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분석한 Muhammad and Zeler (2024)는 러시아-우크라이나 분쟁은 원자력 에너지를 신뢰할 수 있고 지속 가능한 에너지원으로 보는 시각을 강화했다. Elsner (2024)은 이 결정에 기여한 네 가지 주요 요인을 1) 원자력과 가스를 연결하는 위임법, 2) 공동연구센터(JRC) 보고서 발표, 3) 독일(가스)과 프랑스(원자력) 간의 암묵적 타협, 4)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규정하고 있다. Egres and Sarlós (2024)는 EU Taxonomy가 원자력 에너지에 대한 논쟁을 재점화했음을 보여준다. 원자력 지지자들은 저탄소 배출과 기후변화 완화 잠재력을 강조하는 반면, 반대자들은 방사성폐기물과 환경적 위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산업통상자원부, 2021). Chovancová, Petruška, Pata and Adamišin (2025)은 EU 국가들을 여러 클러스터로 구분하여 다양한 에너지원이 CO2 배출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여 가스, 석탄, 석유는 모든 클러스터에서 CO2 배출과 양의 상관관계를 보였으나, 바이오연료는 일관되게 부정적인 효과를 나타냈다. 흥미롭게도 원자력, 태양광, 수력은 가장 유의미하지 않은 계수를 보였기 때문에, 각 국가 클러스터의 특정 조건을 고려한 맞춤형 에너지 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고 보여진다. Haselmann, Steuer and Troger (2023)은 EU Taxonomy를 ‘녹색 투자를 위한 라벨링 체계(labeling scheme for green investments)’로 설명하며, 이것이 파리협정의 목표인 온실가스 배출이 적은 경로와 일치하는 금융 흐름 조성과 연계되어 있음을 강조한다. 이 연구는 EU가 금융 시스템을 “녹색화”하기 위한 야심찬 규제 선구자로 부상했음을 보여준다.
위 문헌들을 종합해보면, EU Taxonomy에서 원자력 에너지의 지속가능성 분류는 단순한 기술적 결정이 아니라 복잡한 정치적, 경제적, 환경적 요인들이 얽힌 과정임을 알 수 있다. Elsner(2024)가 지적한 대로, 지속가능성 규제에 관한 논의가 국가 수준에서 EU 초국가적 수준으로 이동했으며 Egres and Sarlós(2024)는 지속가능성이 EU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논쟁을 조율할 수 있는 잠재적 프레임워크로 부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원자력 에너지는 탄소중립 달성에 기여할 수 있는 저탄소 에너지원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되기도 하지만, 방사성 폐기물 처리 문제 및 안전성 논란 등으로 부정적인 시각도 많다. 녹색분류체계에 원자력 에너지를 포함한 것에 대해서는 다양한 입장이 존재하지만, 미래에 원자력 에너지를 지속해서 활용하기 위해 원자력 에너지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녹색분류체계가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하고 있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EU Taxonomy와 한국형 녹색분류체계에 포함된 원자력 에너지 경제활동의 내용과 기준을 살펴보고 현재 유럽연합과 한국의 원자력 에너지가 친환경 경제활동으로 인정되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나아가 지속 가능한 원자력 에너지 활용을 위한 향후 과제와 시사점을 도출하고자 한다.
Ⅲ. 녹색분류체계
1. 개요
녹색분류체계는 친환경 경제활동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어떤 경제활동이 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한 경제활동인지 구체적으로 분류한 체계이다. 녹색분류체계는 친환경 산업 구조로의 전환 및 지속 가능한 경제로의 이행을 효과적으로 지원하고 녹색금융(Green Finance)을 활성화하기 위해 개발되었다. 녹색분류체계를 활용하면 어떤 경제활동이 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한 지를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기업과 금융기관, 투자자들은 녹색위장행위를 사전에 방지하고 지속 가능한 투자의 투명성을 제고할 수 있다. 특히, 녹색분류체계는 금융기관이 친환경적이고 지속 가능한 프로젝트에 자금을 투자할 수 있도록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2. EU Taxonomy
유럽연합은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목표로 설정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지속 가능한 친환경 경제활동을 명확히 정의하는 기준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였다. 이에 따라 2020년 7월, 세계 최초로 EU Taxonomy2)를 제정하여 친환경 경제활동을 정의하는 법적 기준을 마련하였다. 이후 기후변화 완화, 기후변화 적응 분야의 경제활동과 구체적인 기술기준을 제시하는 기후위임법(Climate Delegated Acts)이 2021년 12월 제정되었으며, 2022년 7월 보완기후위임법제정을 통해 일정 조건을 충족하는 원자력, 천연가스 에너지를 EU Taxonomy에 추가하였다. 마지막으로 기후변화 외 수자원・해양자원의 지속가능한 이용 및 보호, 순환경제 전환, 오염 방지 및 통제, 생물다양성・생태계의 보호 및 복원 분야의 경제활동과 구체적인 기술기준을 제시하는 환경위임법을 2023년 11월에 제정하였다. 금융기관, 자산운용사 등은 EU Taxonomy를 활용하여 녹색위장주의 걱정 없이 친환경 경제활동에 투자를 확대할 수 있으며, 투자의 신뢰성을 제고할 수 있다.
유럽연합은 지속 가능한 친환경 사회로의 전환을 위해 EU Taxonomy를 통해서 달성하고자 하는 6대 환경목표를 제시하였다. 6대 환경목표는 기후변화 완화(Climate Change Mitigation), 기후변화 적응(Climate Change Adaptation), 수자원・해양자원의 지속가능한 이용 및 보호(Sustainable Use and Protection of Water and Marine Resources), 순환경제 전환(Transition to a Circular Economy), 오염 방지 및 통제(Pollution Prevention and Control), 생물다양성・생태계의 보호 및 복원(Protection and Restoration of Biodiversity and Ecosystems)이다.
또한, EU Taxonomy는 36개 분야 242개 경제활동3)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친환경 경제활동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4가지 핵심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첫째, 하나 이상의 환경목표에 중요한 기여(Substantial Contribution, SC)를 해야 한다. 환경목표는 상술한 6개 분야가 있으며, 이 중 최소한 하나 이상의 환경목표에 중요한 기여를 해야 한다. 둘째, 이러한 환경목표에 중요한 기여를 하는 과정에서 다른 환경목표에 중대한 피해를 주지 않아야(Do No Significant Harm, DNSH) 한다. 예를 들어 태양광이나 풍력 발전을 위한 부지 조성 과정에서 생태계를 심각하게 파괴한다면 태양광, 풍력 발전 자체는 기후변화완화에 중요한 기여를 하지만, 그 과정에서 생물다양성・생태계의 보호 및 복원이라는 환경목표에 중대한 피해를 주므로 친환경 경제활동으로 볼 수 없다. 셋째, 최소한의 사회적, 인권 보호 기준(Minimum Safeguards, MS)을 충족해야 한다. 경제활동 영위 과정에서 인권을 유린하거나, 노동을 착취하는 행위가 발생하면 친환경 경제활동으로 인정될 수 없다. 마지막으로 기술 선별 기준(Technical Screening Criteria, TSC)을 충족해야 한다. EU Taxonomy에 포함되는 경제활동이라 할지라도 특정한 기술적 기준에 미달하면 친환경 경제활동으로 인정될 수 없다. 이렇게 4가지 기준을 동시에 모두 충족해야만 친환경 경제활동으로 인정하고 있다.
3. 한국형 녹색분류체계
우리나라도 유럽연합과 마찬가지로 2050년 탄소중립 목표를 설정하고 온실가스 감축, 기후변화 대책 등 탄소중립 사회로 전환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2021년 12월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Taxonomy)를 발표하였으며, EU Taxonomy를 참고하되, 국내 산업 환경, 정책 방향, 기술개발 수준 및 이해관계자 의견을 반영하여 제정되었다. 이후 녹색분류체계 적용 시범사업을 거쳐 2022년 12월 1차 개정을 했으며, 2024년 12월 기후변화 외 환경목표를 중심으로 경제활동을 신설, 보완하는 2차 개정을 완료하였다.
한국형 녹색분류체계는 온실가스 감축, 기후변화 적응, 물의 지속가능한 보전, 순환경제로의 전환, 오염방지 및 관리, 생물다양성 보전이라는 6대 환경목표 설정하고 3가지 원칙을 제시하였다. 첫째, 6대 환경목표 중 하나 이상의 환경목표 달성에 기여해야 한다. 둘째, 환경목표 달성 과정에서 다른 환경목표에 심각한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인권, 노동, 안전, 반부패, 문화재 파괴 등 관련 법규를 위반하지 않아야 한다.
한국형 녹색분류체계가 EU Taxonomy를 참고하여 개발하였기에 두 분류체계 간 유사한 점이 많다. 그러나 녹색분류체계는 각국의 경제, 산업 구조 및 정책 환경 등을 반영하여 만들어지므로 EU Taxonomy와 차이점 또한 명확하게 드러난다. 가장 큰 차이는 법적 강제력 유무와 전환 부문의 존재이다. 먼저 EU Taxonomy는 법으로 제정되어 있어 법적 강제성이 있지만 한국형 녹색분류체계의 경우 자발적 가이드라인으로 형태로 운영되어 법적 강제성이 없다. 또한 EU Taxonomy의 경우 모든 경제활동을 녹색부문으로 정의하는 반면, 한국형 녹색분류체계는 EU Taxonomy와 다르게 녹색부문과 전환부문으로 구분되어 있다. 녹색부문은 탄소중립 및 환경개선에 기여하는 18개 분야 77개 경제활동4)으로, 전환부문은 탄소중립으로 전환하기 위한 중간 과정으로서 과도기적으로 필요한 3개 분야 7개 경제활동으로 구성5)되어 있다. 특히 전환부문은 기간을 명시하여 한시적으로 녹색분류체계에 포함되어 있다.
Ⅳ. 녹색분류체계 내 원자력 에너지
1. EU Taxonomy에 포함된 원자력 에너지 관련 경제활동
유럽연합은 2022년 7월, 보완기후위임법 제정을 통해 Taxonomy에 원자력 에너지와 관련한 3가지 경제활동을 포함하였다. 먼저 ‘연료 주기에서 폐기물을 최소화하면서 원자력 에너지를 생산하는 상용화 이전 단계의 고도화된 기술(Pre-commercial stages of advanced technologies to produce energy from nuclear processes with minimal waste from the fuel cycle)’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폐기물을 최소화하면서 원자력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는 연구(Research), 개발(Development), 실증(Demonstration) 및 도입(Deployment) 활동을 포함하였다. 이는 EU Taxonomy가 방사성폐기물을 최소화할 수 있는 상용화 이전 단계의 혁신적인 원자력 에너지 관련 연구, 개발, 실증 및 도입 활동은 장려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두 번째는 ‘최적가용기술을 이용하여 전기, 열, 수소를 생산할 수 있는 신규 원자력 발전소 건설 및 안전 운영(Construction and safe operation of new nuclear power plants, for the generation of electricity or heat, including for hydrogen production, using best-available technologies)’이다. 모든 신규 원자력 발전소 건설을 포함하는 것은 아니고 2045년까지 건설 허가를 받은 발전소만 대상이 된다. 또한 엄격한 기술선별기준을 충족해야 한다(에너지경제연구원, 2024).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1) 중・저・초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시설을 보유해야 하며, 2050년까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시설 가동을 개시하기 위한 구체적인 세부 단계를 포함된 문서화된 계획이 있어야 한다. 원자력 에너지 사용에 있어 가장 어려운 문제 중 하나인 방사성폐기물을 안전하게 처리하고 보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필수 요건으로 규정한 것이다. (2) 원자력 관련 최적가용기술과 2025년까지 사고저항성핵연료(Accident-tolerant fuel, ATF)를 적용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다만 2025년이라는 적용 시점은 전 세계 사고저항성핵연료 상용화 시점을 고려하여 재검토 가능하다고 언급하고 있다. 사고저항성핵연료는 냉각 기능 상실에 따른 극한 사고 상황을 상당 시간 동안 견딜 수 있는 핵연료이다. 현재 상용화 이전 단계로 연구개발 진행 중이다. 사고저항성핵연료가 상용화되면 원전의 안전성이 제고될 것으로 기대된다. (3) 이 외에도 방사성폐기물 관리기금 및 원전 해체 기금 보유, 원자력발전 과정 전 주기 온실가스 100g CO2eq/kWh 미만 배출 등의 조건을 충족해야 친환경 경제활동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기존 원자력 발전소의 운영(Electricity generation from nuclear energy in existing installations)’이다. 2040년까지 운전 기간 연장을 위한 설비 변경으로 승인받은 발전소만 해당한다. 기술선별기준은 신규 원자력 발전소 건설 및 안전 운영 활동과 같다.
EU Taxonomy에 포함된 원자력 에너지 관련 경제활동을 종합하면 방사성폐기물을 안전하게 처리할 수 있는 명문화된 계획, 부지확보, 충분한 재원과 사고저항성핵연료 적용과 같이 원자력 에너지 활용의 안전성을 보장하기 위한 엄격한 기준을 충족하는 경우에 한 해 일정 기간 EU Taxonomy에 포함하였다고 정리할 수 있다.
2. 한국형 녹색분류체계에 포함된 원자력 에너지 관련 경제활동
우리나라는 2021년 12월 한국형 녹색분류체계 발표 당시, 원자력 에너지의 포함 여부에 대해 향후 국제 동향, 국내 여건을 고려한 사회적 합의를 거쳐 추가 검토 후 결정하겠다고 유보한 바 있다. 전문가 자문, 분야별 세부협의체(사고저항성핵연료, 원자력산업, 금융계, 시민사회 등 11개 분과) 운영 및 관계부처 의견수렴 절차를 거쳐 2022년 9월 원자력 에너지 관련 경제활동 초안을 발표하였다. 이후 초안에 대한 공청회 개최, 산업계・금융계・학계・시민사회 등 각계각층의 의견수렴 및 검토를 거쳐 2022년 12월 한국형 녹색분류체계에 포함할 원자력 에너지 관련 3개 경제활동을 확정하였다.6)
한국형 녹색분류체계에서 원자력 에너지 관련 경제활동은 녹색부문과 전환부문으로 구분하여 포함되었다. 녹색부문에 포함된 경제활동으로는 ‘온실가스 감축 및 안전성・환경성 향상을 위한 원자력 관련 기술의 연구・개발・실증 활동이다. 여기서 원자력 관련 기술이란 (1) 소형모듈원자로(Small Modular Reactor, SMR), (2) 핵연료 주기에서 방사성폐기물 발생을 최소화하면서 전력을 생산・공급하는 차세대 원전 기술, (3) 사고저항성핵연료, (4) 방사성폐기물관리, (5) 원전 해체, (6) 연구용원자로, (7) 해양용 (초)소형원자로, (8) 핵융합, (9) 내진성능 향상, 스마트플랜트 구축 등 원전 안전성 및 설비 신뢰도를 향상할 수 있는 연구, 개발, 실증 활동 일체를 포함한다(에너지경제연구원, 2021).
전환부문에 포함된 경제활동으로는 ‘원자력 기반 에너지 생산(신규건설)’, ‘원자력 기반 에너지 생산(계속운전)’ 2가지가 있다. ‘원자력 기반 에너지 생산(신규건설)’은 전력, 열중 하나 이상을 생산, 공급하기 위하여 원자력을 이용하는 발전설비, 열병합 발전설비, 열 생산설비를 구축・운영하는 활동으로 2045년까지 건설 허가를 받은 설비에 대해 한시적으로 인정한다. 이뿐만 아니라 5가지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1)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의 안전한 저장과 처분을 위한 문서화된 세부 계획이 존재하며,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의 조속한 확보 및 계획 실행을 담보할 수 있는 법률이 제정되어야 한다. 또한 (2)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을 보유해야 한다. (3) 최신기술기준 및 사고저항성핵연료를 적용해야 하며, 여기서 말하는 최신기술기준이란 「원자력안전법」, 「원자력안전위원회 규칙 및 고시법」내 최신 기술기준을 모두 준수하는 것을 말한다. (4) 전력, 열의 에너지 생산량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이 100g CO2eq/kWh 이내에 해당해야 하며, (5) 방사성폐기물 관리기금 및 원전해체비용을 관계 법령을 준수하여 발전소 영구 정지 시점까지 필요한 비용을 확보해야 한다. ‘원자력 기반 에너지 생산(계속운전)’은 2045년까지 계속운전을 허가받은 설비에 대해 인정하며 사고저항성핵연료는 2031년부터 적용해야 한다. 그 외에 고준위,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 방사성폐기물 관리기금 및 원전해체비용 보유 여부, 온실가스 배출량 기준 등은 신규건설 부분과 같다.
한국형 녹색분류체계에 포함된 원자력 에너지 관련 경제활동을 종합하면 원전 안전성 및 설비 신뢰도 향상을 위한 연구, 개발, 실증 활동에 대해서는 녹색부문에 포함하여 미래지향적 연구, 개발, 실증 활동을 장려하는 한편, 원자력 발전소의 신규건설 및 계속운전은 한시적으로 전환부문 포함하여 탄소중립 목표를 위한 최종 지향점은 아니지만 현재 단계에서 탄소중립으로 전환하기 위한 중간 과정으로서 과도기적으로 필요한 경제활동으로 원자력 에너지를 인정하였다고 볼 수 있다.
EU Taxonomy와 한국형 녹색분류체계는 원자력 에너지를 친환경 경제활동으로 인정하는 데 있어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 확보와 사고저항성핵연료 적용을 핵심 기준으로 설정하고 있다는 점은 같지만, 구체적인 내용이나 적용 시기는 차이를 보인다. EU Taxonomy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 확보 일정을 2050년으로 구체적으로 명시한 반면, 한국형 녹색분류체계는 구체적인 시기보다는 법적 근거 마련 등 제도적 장치 구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는 유럽의 일부 국가는 이미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이 건설되고 있는 반면, 아직 우리나라는 부지선정부터 해야 하는 초기 단계라는 점이 고려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사고저항성핵연료 적용 시점 역시 EU Taxonomy에 비해 다소 완화된 시기를 설정함으로써 국내 기술개발 수준, 진행 상황 등을 고려하여 유연하게 접근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한국형 녹색분류체계에서는 녹색부문과 전환부문이라는 카테고리를 구분해 원자력 발전소에 대한 신규건설 및 계속운전을 전환부문에 포함했다. 이는 현재 기술 수준의 원자력 발전은 미래에 지속 가능한 에너지원은 아니라는 점을 간접적으로 나타내주는 것으로 생각한다.
3. 원자력 에너지 녹색분류체계 적용 검토
EU Taxonomy와 한국형 녹색분류체계 포함된 원자력 에너지 관련 경제활동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녹색분류체계에 포함되었다고 해서 친환경 경제활동으로 인정되는 것은 아니며, 기술선별기준(우리나라는 인정기준)을 비롯한 여러 가지 기준을 충족해야만 친환경 경제활동으로 인정될 수 있다. 특히, EU Taxonomy와 한국형 녹색분류체계에서 원자력 에너지의 친환경성을 평가하는 핵심 기준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의 확보와 사고저항성핵연료 적용 여부로 요약될 수 있다. 특히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의 확보는 단순한 기술적 문제를 넘어 정책적, 사회적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있어 처분시설 확보가 매우 어렵다.
핀란드가 세계 최초로 심지층에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을 건설 중이며 2025년 운영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 원전 5기를 보유하고 있는 핀란드는 원자력 발전소를 운영하는 초기인 1983년부터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최종 처분에 관한 논의를 시작하였으며, 2001년 부지를 선정하였다. 이후 심층처분시설 건설을 위한 인허가 절차를 진행하였으며, 2004년 처분시설 건설에 착수하였다.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진행된 핀란드의 사례조차 사회적 논의 시작부터 운영까지 약 40년이 소요되었다. 따라서 EU Taxonomy에서 제시한 2050년까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을 확보해야 한다는 조건은 매우 엄격한 기준이다. 핀란드는 이미 처분시설 건설이 진행 중이며, 2025년부터 운영될 예정이므로 EU Taxonomy가 요구하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 확보 조건을 충족하는 국가로 평가된다.
스웨덴 역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 확보를 위한 노력을 지속해 왔다. 스웨덴은 2009년에 부지를 선정하였고, 2022년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에 대한 건설 허가를 획득하였으며, 2025년에 건설 착수를 계획하고 있다. 스웨덴은 핀란드에 이어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 확보 과정에서 가장 앞서 있는 국가로 평가되며, 2030년대 후반에는 처분시설 운영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스웨덴 역시 EU Taxonomy에서 요구하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 확보 기준을 충족하는 국가로 볼 수 있다.
프랑스는 원자력을 주요 에너지원으로 활용하고 있는 대표적인 국가로, 1991년 방사성폐기물연구법을 제정하여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 확보를 위한 사회적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이후 대국민 공개토론 등을 거처 2010년 최종적으로 부지를 선정하고 건설 허가를 신청하였다. 프랑스는 2027년에 처분시설 건설을 착수할 계획이며, 2040년대에는 처분시설 운영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프랑스 역시 EU Taxonomy에서 요구하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 확보 기준을 충족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원자력 발전소의 안전성을 강화하기 위한 핵심기술로 평가받는 사고저항성핵연료는 현재 미국과 프랑스가 개발을 주도하고 있다. 미국은 에너지부(Department of Energy, DOE)가 지원하는 사고저항성핵연료 개발 사업에 Westinghouse Electric Company(WEC)가 주도적으로 참여하면서 Army National Lab, General Atomics 등과 협력하면서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은 2027년까지 모든 기술개발을 완료하고 상용 인허가를 취득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원자력 관련 기업인 Framatome社는 미국 에너지부와 사고저항성핵연료 개발 협정 체결을 체결하여 개발하고 있다. 프랑스는 빠르면 2029년경에 상용화될 것으로 보인다. EU Taxonomy에서는 2025년부터 원자력 발전소에 사고저항성핵연료를 적용할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주요 국가의 사고저항성핵연료 개발 동향을 살펴보면 상용화 시점이 이를 충족하기 어렵다. EU Taxonomy에서도 사고저항성핵연료의 상용화 일정을 고려하여 적용 기준을 재검토할 수 있음을 명시하고 있으므로 적용 시점이 조정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한국형 녹색분류체계는 특정 시점까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을 확보해야 한다는 조건은 없다. 다만,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의 안전한 저장과 처분을 위한 문서화된 세부 계획과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의 조속한 확보 및 계획 실행을 담보할 수 있는 법률이 제정되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우리나라는 「방사성폐기물 관리법」제6조에 따라 30년을 계획기간으로 하는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관한 기본계획을 5년마다 수립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2021년 12월 정부는 방사성폐기물 기본정책, 부지선정 등 시설계획, 투자계획을 포함한 제2차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을 발표하였다. 또한 수년간 제정되지 못했던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이 2025년 2월 2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였다.7) 이에 따라 한국형 녹색분류체계에서 요구하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 관련 기준을 충족하였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우리나라는 한전원자력연료, 한국원자력연구원, 한국수력원자력이 협력하여 사고저항성핵연료를 개발하고 있다. 현재 연구로 연소시험을 진행 중이며 프랑스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시범집합체 다발을 만들었다. 2025년 내 상용 원전 시범집합체 연소시험을 착수할 예정이다. 현재 상황을 종합해보면 우리나라는 상용로 연소시험 후 설계기술을 확보, 2031년까지 상용화를 목표로 연구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Ⅴ. 원자력 에너지 향후 과제
지금까지 EU Taxonomy와 한국형 녹색분류체계에 포함된 원자력 에너지 관련 경제활동 세부 내용에 대해 살펴보았다. 또한 원자력을 주요 에너지로 활용하고 있는 나라의 녹색분류체계 충족 여부를 검토해 보았다. 원자력의 녹색분류체계 충족의 중요성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안보 측면, 트럼프 정부의 파리기후변화협약 탈퇴 등 최근 국제정치적 변화 속에서 더욱 강조되고 있다. 일련의 사건들은 각국의 에너지 정책 기조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원자력을 에너지 안보 및 탄소중립의 수단으로 재조명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는 프랑스・폴란드 등의 국가는 원자력 찬성, 독일・룩셈부르크 등의 국가는 원자력 반대하는 등 국가별로 원자력에 대한 관점이 서로 다르지만, 원자력 에너지를 EU Taxonomy에 포함하게 된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이며, 기술적 판단을 넘어 정치・경제적 전략의 결과물로 이해할 수 있다.
미래에 원자력 에너지를 지속해서 활용하기 위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녹색분류체계가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하고 있다. EU Taxonomy와 한국형 녹색분류체계에서 기준으로 제시한 것처럼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에 대한 안전한 처분과 예기치 못한 원전 사고 발생 시 안정성 확보 두 가지가 원자력 에너지를 지속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핵심으로 생각된다.
우리나라도 핀란드, 스웨덴처럼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을 확보해야 한다. 한국형 녹색분류체계에서는 EU Taxonomy의 2050년처럼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 확보를 요구하는 명확한 시한은 없지만, 가능한 한 빨리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이미 처분시설을 확보했거나, 부지를 선정하고 건설 예정인 국가를 벤치마킹하여 부지선정 절차를 진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김혜림・김민정・박선주・윤운상・박정훈・이정환(2023)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 부지선정 과정의 해외 사례를 분석하였다. 분석 결과,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 선도국의 부지선정 방식에서 알 수 있는 공통점은 법과 제도를 먼저 만들고 부지선정 과정을 시작했다는 것, 각 나라의 지질 조건에 따라 부지선정 항목을 선정하고 최종 1개의 부지를 선정하기까지 후보부지가 순차적으로 줄어들 수 있도록 부지선정 과정을 진행한다는 것이다. 또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 선도국의 부지선정 방식을 주민 참여 시기를 기준으로 유형을 크게 세 가지8)로 나누며 우리에게 적합한 방식을 찾아야 한다고 제안하고 있다. 김인혜 등(2024)은 기술・경제적 합리성과 정치적 합리성 개념을 중심으로 한국, 스웨덴, 핀란드 사례를 비교하여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 부지선정 정책에 대한 시사점을 제시하였다. 법적 절차에 대한 투명성을 확보하면서도 주민투표는 지역주민들의 동의 및 거부 권한을 확인하는 전제 절차로 고려되어야 하며, 주민투표도 역기능이 있으므로 주민투표 전 방폐장에 대한 충분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재광(2020) 역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 부지선정 시 주민의견수렴제도를 실질적으로 운영할 것과 절차적 투명성을 강조하였다.
2021년 12월 정부에서 발표한 제2차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에 따르면 향후 20년 내 중간 저장시설을 확보하고 37년 내 영구 처분시설 확보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목표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부지선정 절차 착수 후 부지선정까지 약 13년, 부지선정 후 영구처분시설 확보까지 약 24년이 소요된다. 그러나 기본계획 발표 후 3년 이상이 지난 지금 큰 진전이 있지 않아 보인다. 다만, 그동안 수년간 제정되지 못했던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된 것은 그 무엇보다도 큰 성과라고 볼 수 있다. 통과된 법안 제17조를 보면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중간저장시설은 2050년 이전,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은 2060년 이전에 운영을 개시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라고 되어 있다. EU Taxonomy에서 제시한 2050년에 미치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구체적인 확보 시기를 제시했다는 것은 정책 당국이나 지역주민에게 압박으로 작용할 수 있어 부지선정 등 향후 처분시설 확보 진행 과정에서의 동력이 될 수 있다.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 확보를 조금이라도 당길 수 있는 제반 활동은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대표적인 예로 지하연구시설(Underground Research Laboratory, URL)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지하연구시설은 심지층 처분시설 건설 전에 국내 지질환경에 적합한 실증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연구시설로 이를 잘 활용한다면 처분시설 확보에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배대석・고용권・이상진・김현주・최병일, 2013). 그뿐만 아니라 기술한 바와 같이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을 선도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핀란드, 스웨덴, 프랑스 등 처분시설 선도국의 부지선정 의사결정 과정 등을 면밀히 검토하여 우리나라 부지선정 과정 시, 이를 반영하여 시간을 단축할 필요가 있다(김혜림 등, 2023; 나태유・채병곤・박의섭・김민준, 2024; 천대성・전석원・김기석・신영진・이정환, 2024a, 2024b, 2024c, 2024d).
원전의 안전성 측면에서는 녹색분류체계에서 언급한 원전 안전성 및 설비 신뢰도 향상을 위한 연구, 개발, 실증 활동을 장려할 필요가 있다. 대표적으로 소형모듈원자로, 핵연료 주기에서 방사성폐기물 발생을 최소화하면서 전력을 생산・공급하는 차세대 원전 기술과 같은 미래지향적인 원자력 기술이다. 또한 사고 시 냉각 기능 상실에 따른 가혹한 환경을 상당 시간 동안 견딜 수 있는 사고저항성핵연료의 조속한 개발도 필요하다. 현재 기준, 전 세계 상용화된 사고저항성핵연료는 없다. 미국, 프랑스 등 사고저항성핵연료 연구・개발에 앞서고 있는 국가와 비교해 기술력이 뒤떨어지지 않도록 정부와 원자력 업계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Ⅵ. 결론
기후위기를 극복하고 탄소중립을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해서는 지속 가능한 친환경 산업 구조로의 전환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친환경 산업에 대규모의 자금조달과 금융지원이 필수적이다. 녹색분류체계는 친환경 경제활동을 정의하여 기업, 금융기관, 투자자 등이 녹색경제로의 전환을 효과적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녹색분류체계를 활용하면 어떤 경제활동이 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한 지를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기업과 금융기관, 투자자들은 녹색위장행위를 사전에 방지하고 지속 가능한 투자의 투명성을 높일 수 있다.
엄격한 기준을 충족한다는 전제하에 원자력 에너지가 EU Taxonomy와 한국형 녹색분류체계에 포함되었다. EU Taxonomy는 방사성폐기물을 최소화할 수 있는 상용화 이전 단계의 혁신적인 원자력 에너지 관련 연구, 개발, 실증 및 도입 활동과 방사성폐기물 처리시설 확보 및 사고저항성핵연료 적용 등을 전제로 한 2045년까지 허가받은 원자력 발전소 신규건설 및 2040년까지 허가받은 계속 운전을 한시적으로 친환경 경제활동으로 포함하였다. 한국형 녹색분류체계에서는 온실가스 감축 및 안전성・환경성 향상을 위한 원자력 관련 기술의 연구・개발・실증 활동과 방사성폐기물 처리시설 확보 및 사고저항성핵연료 적용 등을 전제로 한 2045년까지 허가받은 원자력 발전소 신규건설 및 계속 운전을 한시적으로 친환경 경제활동으로 포함하였다.
녹색분류체계에 원자력 에너지를 포함한 것에 대해서는 다양한 입장이 존재할 수 있지만, 미래에 원자력 에너지를 지속해서 활용하기 위해 원자력 에너지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녹색분류체계가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하고 있다. 첫째, 원자력 에너지를 활용하려는 국가에서는 반드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이 필요하다. 처분시설 확보는 매우 어렵기 때문에 대부분 국가에서 사용후핵연료를 발전소 부지 내 습식 또는 건식 저장시설에 임시로 보관하고 있다. 하지만, 수십 년 지속되다 보니 부지 내 저장시설의 포화 시점이 다가오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경우 2030년부터 저장시설 포화가 된다. 원자력 에너지의 지속 가능한 활용을 위해서는 조속히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둘째, 원자력 에너지를 혁신적으로 개선하고 활용할 수 있는 연구・개발활동은 장려되어야 한다. 현재까지 우리가 활용하고 있는 원자력은 방사성폐기물, 안전성 문제 등으로 지속 가능한 에너지원이 맞는지에 대한 의문이 존재했고, 국가마다 원전 정책이 다르다. 그러나 혁신적인 기술개발로 폐기물, 안전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효율적인 에너지원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한국형 녹색분류체계에서도 원자력 발전소에 대한 신규건설 및 계속운전을 전환부문에 포함해 현재 기술 수준의 원자력발전은 미래에도 지속 가능한 에너지원은 아니라는 점을 간접적으로 나타내주는 것으로 생각한다. EU Taxonomy에서 사고저항성 핵연료 적용 시점을 2025년으로 명시하고, 실제 상용화 시점을 고려하여 시기 조정이 가능하다고 언급했듯이, 녹색분류체계는 국내외 여건, 기술 발전에 따라 지속적으로 개정이 필요하다. 한국형 녹색분류체계도 원자력 에너지와 관련한 도전적인 기준을 제시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산업계, 학계, 정부가 노력하는 선순환 체계를 구축한다면 원자력이 지속 가능한 에너지원으로 한층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2025년 2월,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를 위한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 선도국인 핀란드, 스웨덴 등 해외 주요 국가 사례와 우리나라의 과거 실패 사례, 그리고 경주에 유치했던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 과정 등을 참고하여 본격적인 부지선정 절차에 돌입해야 한다. 또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 못지않게 원자력 발전소의 안전한 가동과 불가피한 사고 발생 시 비상 대책 등 원자력 에너지의 안전성 제고는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사고저항성핵연료를 포함한 원자력 안전 분야의 연구, 개발 활동도 게을리해서는 안 될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의 원자력산업은 에너지 안보와 더불어 국가 전략산업으로서의 특수성을 갖는다. 우리나라는 다수의 상용 원전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원전 수출을 추진하고 있으며, 소형모듈원자로(SMR) 기술개발 등에서도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향후 한국형 녹색분류체계 개정 시에 이러한 특수성을 종합적으로 감안한 정책적 접근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본 연구에 한계점은 존재한다. 원자력 에너지는 전주기 온실가스 배출량이 매우 낮으며, 재생에너지의 간헐성 문제를 보완할 수 있어 탄소중립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에너지원이지만 원전 사고 위험, 온배수 배출 문제, 수명 종료된 원자력 발전소에 대한 해체 및 부지 복원 문제, 출력 조절이 어려워 전력 수요 변동에 유연하게 대응하기 어려운 경직성 문제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 원자력 에너지의 지속 가능한 활용을 위해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문제이다. 본 연구는 EU Taxonomy와 한국형 녹색분류체계 내 포함된 원자력 에너지 활동에 초점을 맞추어 분석하다 보니 이러한 중요한 문제를 모두 다루지 못했다는 점에서 그 한계가 있다.
Acknowledgments
본 논문의 내용은 저자 소속기관의 견해와는 무관함을 밝힙니다.
No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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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현재 한양대학교 국제학부・글로벌기후환경학과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2024년 Stanford University/Elsevier 선정 세계 상위 2% 학자로 등재되었으며, 주요 연구 관심분야는 비시장 전략, 글로벌 전략, 녹색 혁신, 녹색 소비, 개방형 혁신, 제도 이론 등이다. 해외 저명 학술지 및 국내 학술지의 편집위원 및 편집장을 다수 역임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국제저명 학술지에 80여 편, 국내 학술지에 90여 편의 논문을 게재하였다(twroh@hanyang.ac.kr).

